타카하시 이사오는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쌍벽을 이루는 영화감독이다. 매출은 미야자키 하야오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의 영화 표현의 기발함과 참신함은 일본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필자가 그의 연출 방식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이 희대의 연출가 다카하시 이사오의 영화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
다카하타 이사오란
타카바타 이사오(高畑 勲, 1935년 10월 29일 ~ 2018년 4월 5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감독이다. 하타 사무소 대표, 공익재단법인 토쿠마 기념 애니메이션 문화재단 이사. 일본대학 예술학부 강사, 가쿠슈인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수석연구원, 다마미술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자수포장을 수상했다. 영화 프로듀서, 프랑스 문학(자크 프레베르)의 번역도 담당하고 있으며, 1959년 동영상에 입사.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으로 장편 영화를 처음 연출한 후 1971년부터 A프로덕션으로 옮겼다. 이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를 찾아 삼천리’ 등의 TV 애니메이션을 거쳐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감독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연구자들은 유형화되지 않은 캐릭터의 연기와 감정 표현을 도입한 점, 세심한 일상 묘사로 생활감을 부여한 점, 배경과 캐릭터의 일체화 등 혁신적인 표현에 계속 도전한 점을 애니메이션에 대한 공적으로 평가한다.
‘유형화되지 않는 캐릭터의 연기와 감정 표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표현 방식의 참신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에는 ‘영화음악’에 초점을 맞춰 고찰해보고자 하는데, 도대체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할까. 나는 이번에 그 구체적인 작품을 선정함에 있어 그의 유작인 ‘카구야 공주 이야기’에 그 ‘표현 방식의 참신함’이 최대로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구야 공주 이야기
“카구야 공주 이야기》(かぐや姫のものがたり)는 《다케토리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감독은 타카하시 이사오가 맡았으며, 2013년 11월 23일에 개봉했다.
다카하타의 감독 작품은 1999년 ‘호호케쿄와 이웃집 야마다 군’ 이후 14년 만이다. 다카하타는 본작 개봉 4년 반 후인 2018년 4월 5일 사망하여 본작이 유작이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기획 시작부터 8년의 세월과 50억 엔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기법 면에서는 ‘호호케쿄와 이웃집 야마다 군’에서 도입된 애니메이터가 직접 그린 선을 살린 수필풍의 스타일이 이번 작품에서도 사용되었다. 또한, 배경도 동영상에 가까운 터치로 그려져 양자가 하나가 되어 ‘한 장의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본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마쳤으나, 내가 이번에 고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의 음악이다. 그런데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타케토리 이야기’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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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카구야 공주 이야기’라는 작품의 원작은 다름 아닌 그 ‘다케토리 이야기’이다. 카구야공주라는 천인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하늘의 마중을 받아 울며 겨자 먹기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 클라이막스 장면은 성장한 노부부와 사랑에 빠진 황제와의 이별이 절절하게 그려져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카구야 공주 이야기’에서도 이곳은 초감동적인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예의 그 괴상한 노래가 뒤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이 이미지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천인들이 카구야 공주를 데리러 오는 장면의 이미지다. 원래라면 감동적이거나 비극적인 오케스트라가 크게 울려 퍼져 관객의 눈물샘을 터뜨리게 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 다카하타가 여기서 틀어놓은 음악은 어찌나 흥겨운 삼바 같은 음악이었는지. 나는 당시 극장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고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쏟아져 나오던 눈물이 한꺼번에 쏙 들어가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게 하는 것 같은 짜증 같은 것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화감 가득한 연출에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확실했다. 또한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처럼 가슴 뛰는 모험담 같은 작품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재미있었다! ‘라고 뿌듯한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 후에도 가슴 속에 계속 남아서 그 능청스러운 삼바와 카구야 공주의 눈물이 끝없이 뇌리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 왜 그 영화가, 특히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는지, 그것을 언어화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것이 나중에 다양한 영화 표현의 담론을 접하고, 그리고 다름 아닌 다카하시 이사오의 과거 저작 등을 읽어가면서 예시의 연출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고,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다카하타는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그는 무엇에 영향을 받았을까? 과연 그 수법의 효과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그 거장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볼레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영화다. 다이에이(현 카도카와 영화)의 1950년(쇼와 25년) 일본 영화이다.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 미후네 토시로, 교 마치코, 모리 마사유키 등이 출연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야부노나카’를 원작으로 하고, 제목과 설정 등은 역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라쇼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사 살해 사건의 목격자와 관계자들이 각기 다른 증언을 하는 모습을 각자의 관점에서 그려내면서 인간의 이기주의를 날카롭게 추적하지만, 마지막에 인간 신뢰의 메시지를 호소하는 작품이다. 촬영 담당 미야가와 이치오의 무성영화의 아름다움을 의식한 시각적 영상 표현이 특징이며,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를 통한 영상미, 당시 금기시되었던 태양에 직접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법 등 참신한 촬영 기법으로 흑백 영상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냈다. 제1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금사자상, 제2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명예상(현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그동안 국제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영화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또한 이 작품의 수상은 일본 영화 산업이 국제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된 대작이다.
그렇다면 이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명화에서 다카하타는 도대체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 작품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 등장인물인 나무꾼이 숲을 헤쳐 나갈 때 연주되는 ‘볼레로’ 풍의 음악이다. 그는 저서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한 것들’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고찰하고 있다.
볼레로
“솔매가 점점 숲 속을 헤쳐나간다. 대나무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아찔하게 뒤뚱거린다. 역광에 비친 새까만 잎사귀와 그물망 같은 나뭇가지. 햇볕이 나뭇가지에 부서져 희미한 빛을 발산한다. 솔매가 진행된다. 잎 가장자리가 빛난다. 새까만 ‘그림자’와 눈부신 ‘빛’의 날카롭고 가느다란 교차점이 아찔하게 변화하며 눈을 사로잡는다. 그 위에 볼레로가 얹혀진다. 불안한 리듬. 그 효과는 대단하다.”
지금은 시대극에 서양 음악을 붙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지만, 1950년경에는 아직은 참신한 시도였다. 그래서 당시 많은 관객들은 그 파격적인 극음악에 당황스러워했던 것 같다. 또한 멜로디 자체도 인물의 심리를 자극하는 극적인 것이 아니라 단조로운 리듬으로 마치 장면을 내려다보며 관찰하듯 담담하게 진행된다. 다카하타는 이러한 볼레로의 효과를 통해 음악을 단순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영상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때로는 이화를 가져오는 표현을 배웠을 것이다. 참고로 ‘이화’란 옥스퍼드 영화 연구 용어 사전에서는 ‘영화 연구에서 이 용어는 작품에 대한 도취적인 감정 이입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관객의 수동적인 몰입과는 대조적으로 비평적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기도를 가리킨다’고 한다. 또한 다카하타는 이렇게 말한다.
“’하이디’는 역시 넓은 의미의 판타지였고, 그런 의도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향을 그렸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결과적으로 판타지적인 것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일상 생활 속에서 현실적으로 느끼는 세계를 다루는 일이 많아졌고, 무대도 일본으로 한정하게 되었다. 왜 그런가 하면, 일본 전역에 판타지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판타지는 해악만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계속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것, 조금은 거친 느낌의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다행이다’라는 말을 듣고 끝나지 않도록 노력해 왔습니다.”(‘호호케쿄 옆집의 야마다 군’을 말하는 다카하시 이사오(高畑勲)’, 『시네프론트 273』, 1999년)
작품 세계와 현실 세계가 다른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이른바 이질화 효과를 위해 그 애니메이션의 세계 자체를 하나의 리얼리티를 가진 믿을 수 있는 ‘실재하는’ 세계로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세계가 ‘믿을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두 세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질화 효과의 본래 목적은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사고방식을 갖게 하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하는 것이 다카하타의 진정한 목표일 것이다. 타카하타 역시 음악에 의한 이질화 효과를 이용하여 관객을 ‘최면 상태’에서 깨워 이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은 결코 나의 추측이 아니다.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발언을 다카하시 본인이 과거 대담에서 말한 바 있다.
작곡가 쿠이시 요시노리와의 대담
히사이시: 초보자를 위한 랙 같은 거죠. 힘들었던 건 그 이후였어요. 다카하시 씨로부터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 ‘상황에 끼워 넣지 말라’,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영화 음악으로 요구될 수 있는 부분들이 모두 금기시되었어요.
타카하시: 쿠이시 씨가 조금 과장되게 말씀하셨네요(웃음). 하지만 주인공의 슬픔에 슬픈 음악이 아니라, 관객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면서 지켜보는,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원한다고요. 쿠이시 씨라면 해 주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악인'(이상일 감독)의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감탄했어요. 운명을 지켜보는 음악이었으니까요.
구이시: 평소에는 희노애락 같은 감정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노을을 보고 감동한 기분’이라든가. 하지만 최대한 그런 부분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고, ‘악인’은 그것이 잘 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다카하타 씨의 지시는 그 이상이어서 힘들었어요. 산수화처럼 생략된 그림이 많은데, 음악에서도 같은 것을 원하셨어요. 그래서 먼저 핵심적인 부분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삶의 기쁨’과 ‘운명’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다카하타:
아미타불이 마중 나오는 그림인 아미타불도(阿弥陀来迎図)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그런 그림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그림 속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려져 있는 악기는 쇼소인(正倉院)에만 있을 법한 서역의 악기들만 그려져 있고, 일본에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봐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타악기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천인들은 분명 고민 없는 리듬으로 유쾌하고 흥겨운 음악을 울리며 내려왔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아이디어는 삼바였어요.
히사이시:
삼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충격적이었어요. ‘아, 이 영화가 어디까지 갈까’ 싶었죠(웃음). 하지만 덕분에 스위치가 켜졌어요. 영화 전체가 서양 음악,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한 영화인데, 천인의 음악만은 선곡 실수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변화를 주려고 했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도 좋지 않아서 고민한 결과, 켈틱 하프, 아프리카의 북, 남미의 현악기 차랑고 등을 간단한 프레이즈로 계속 넣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거절당할 줄 알고 가져갔는데, 타카하시 씨가 ‘좋네요’라고 하더라고요.
타카하타:
이것은 쿠이시 씨께서도 강조하시는, 영화 음악의 기본은 그림에 대한 대위법적이어야 한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당시 나는 그 ‘카구야 공주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감성적인 이별 장면’을 기대하며 기분이 들떠 있던 상태였는데, 삼바에 의해 뇌 속은 한순간에 냉각되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도대체 카구야 공주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가 이 땅에 가져온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냉철한 비평가적 시선이 생겨나 이야기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설마 이것이 다카하타의 의도였을 줄은 당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의 혼란스러움은 바로 그의 ‘이화’ 효과에 의한 선물이었고, 지속적인 이야기 이해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한 최적의 해답이었다.
끝으로
나는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많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다뤄왔다. 구로다 유오의 ‘방해가 되는 히라가나 의성어’나 모리타 요시미츠의 ‘사생문적 표현’ 등이 그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그러한 위화감을 조성하는 모든 연출은 ‘이화’ 효과에 해당할 것이다. 타카하시 이사오를 필두로 이들의 공통점은 ‘관객을 등장인물의 심정에 매몰시키지 않고,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한다’는 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흥행적인 측면에서는 쓴맛을 보는 결말이 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질화’를 솔직하게 그려내는 그들의 작품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열쇠가 있고, 혹은 이웃에 대한 친절함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잠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 블로그의 필자: R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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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타 이사오 Wikipedia
카구야 공주 이야기 Wikipedia
영화음악과 하야사카 후미오의 죽음」・「영화음악과 하야사카 후미오의 죽음
・로맨스 앨범 카구야 공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