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꿈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이름만 보고 그곳에 엄청난 대자연이 펼쳐져 있거나 호화찬란한 레저시설이 펼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꿈의 섬’의 실체는 0.9㎢ 정도의 무기질이지만 깨끗하고 운동장 등이 정비된, 별 볼일 없는 매립지다.
당초 이 땅은 비행장이 건설될 예정이었다. 전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욕장으로 붐비고 유원지 등이 계획되는 등, 당시 언론 등에서 매립지를 ‘꿈의 섬’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다시 한 번 이곳을 바라보면 넓은 부지에 운동장, 식물관, 청소 공장 등이 있을 뿐, ‘꿈의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시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 역시 예전에 방문했을 때 그 황량한 풍경을 앞에 두고 ‘왠지 모르게 삭막한 공간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 ‘꿈의 섬’의 현 상황을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 땅이 걸어온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를. 선조들의 투쟁의 변천을. 이 섬은 인간에 의한, 인간에 의한 재해, 그리고 부흥이라는 뼈아픈 기억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나 자신도 후술할 그런 경위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꿈의 섬’이라는 인공섬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역사와 그것을 극복해 온 선조들의 위대한 전기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개요
강동구의 마을인 ‘꿈의 섬’은 인공섬(매립지)이다.
서쪽에는 유메노시마 경기장, 유메노시마 운동광장이 있다. 메이지도리 동쪽은 대부분 유메지마 공원으로 공원 내에는 도쿄 스포츠 문화관, 도쿄도립 제5복룡마루 전시관, 유메지마 열대식물관이 있으며, 지구 동쪽 끝 부근에는 신강동 청소공장, 유메지마 마리나, 유소년 야구장 등이 있다.
매립 시작과 비행장 계획
전쟁 전인 1938년(쇼와 13년), 도쿄시의 ‘도쿄시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도쿄만 매립이 시작된 것이 꿈의 섬의 시작이었다. 해변에는 야자수가 심어져 ‘도쿄의 하와이’로 선전되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또한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행장 개발 계획도 있었지만, 중일전쟁으로 인해 공사 전력 공급 설비 자재를 확보하지 못해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41년(쇼와 16년)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종전 후 GHQ가 하네다 공항을 점령하고 주둔군의 대형 항공기 이착륙용으로 정비하면서 꿈의 섬 비행장 계획은 사라졌다. 남은 매립지는 ‘유메노시마 해수욕장’으로 정비되었고, ‘유메노시마’라는 이름은 이때 붙여졌다. 그러나 태풍 피해 등으로 해수욕장은 3년 만에 폐쇄되었다.
도쿄 쓰레기 전쟁
도쿄 쓰레기 전쟁(東京ゴミ戦争)은 도쿄도 구(東京都区部)의 폐기물(쓰레기) 처리 및 처리에 관한 분쟁(쓰레기 문제)을 가리킨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고토구와 스기나미구 사이에서 발생한 쓰레기 처리 및 처리 관련 분쟁을 가리키는데, 1971년 미노베 료요시(美濃部亮吉) 도쿄도지사가 ‘쓰레기 전쟁 선언’을 하면서 ‘쓰레기 전쟁’이라는 명칭이 부각되었다.
1950년대 고도성장기에 도쿄도 내에서 쓰레기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도쿄도는 이곳을 쓰레기의 최종 처리장으로 결정하고 1957년 12월부터 쓰레기 매립을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꿈의 섬’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오명을 짊어지게 된다.
매립 중이던 1961년 7월 23일 매립지 북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정 3척의 소방활동에도 불구하고 2주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아 4만 평방미터가 불에 타버렸다. 이는 당시 전체 면적의 약 40퍼센트에 해당한다. 또한 당시에는 쓰레기를 소각하지 않고 그대로 매립했기 때문에 악취와 파리, 쥐 발생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1965년(쇼와 40년) 7월 16일, 꿈의 섬에서 발생한 파리 떼가 강한 남풍을 타고 강동구를 중심으로 한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 인근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쿄도와 강동구에서 열심히 소독 작업을 실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해 경시청, 도쿄소방청, 자위대의 협조를 받아 절벽을 불태우는 ‘꿈의 섬 초토화 작전’이 실시되었다.
소방청과 자위대가 출동. 다량의 약품을 뿌리고 중유를 뿌려 쓰레기를 태웠다. 당시 담당자는 ‘백년사’에서 “소화를 전문으로 하는 소방관들이 눈을 부릅뜨고 불을 지르며 돌아다녔다…”, “마치 한낮의 악몽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이후 쓰레기 매립지로서의 역할은 꿈의 섬 옆 매립지 15호, 일명 ‘신유메노시마'(현 와카스)로 옮겨졌지만 쓰레기 공해는 계속되었고, 1971년 강동구 구청장이 “강동구만 도시 쓰레기 공해의 온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이에 당시 도쿄도지사는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각 구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구내에서 처리하도록 쓰레기 소각 처리를 위한 청소공장 건설을 약속했다.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쓰레기 문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자기 구내에 청소 공장 건설을 극렬히 반대하는 스기나미구에 대해 코토구가 도로를 봉쇄하고 쓰레기 반입을 막는 실력 행사로 쓰레기 수거가 중단되어 스기나미구의 거리에 쓰레기가 방치되는 사태까지 발전하면서 쓰레기 전쟁은 종결되었다. 현재도 도쿄만에 쓰레기가 매립되고 있지만, 쓰레기는 청소공장에서 소각되어 부피가 20분의 1 이하의 재가 된 후 매립되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공해는 없어졌다.
현재
강동구의 청소공장이 꿈의 섬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강동구의 요청에 따라 도쿄도는 청소공장 건설의 대가로 꿈의 섬을 공원화하고 그 안에 청소공장의 여열을 이용한 온실, 체육관, 수영장, 경기장, 야구장 등 5개 시설을 건설할 것을 약속했다.
1974년 강동 청소공장이 완공되었다. 이듬해 ‘꿈의 섬’이 정식 마을 이름이 되어 강동구로 편입되었다. 약속대로 체육관, 수영장 등도 순차적으로 개관했다.
꿈의 섬 전역을 덮고 있는 쓰레기 층 위에 흙을 덮고 잔디와 나무를 심어 녹지화하여 1978년(쇼와 53년)에 ‘꿈의 섬 공원’이 개장했다.
그 후 정비가 진행되어 ‘쓰레기 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스포츠 시설이 건설됨과 동시에 ‘녹색의 섬’으로 거듭난 것이다. 식재 식물로는 바닷바람과 황무지, 건조에 강한 유칼립투스를 선택했다. 이 유칼립투스 잎은 도쿄 시내 동물원의 코알라 먹이로 공급되기도 했다. 이후 카나리아 야자, 말바데이고 등 열대-아열대산 노지 재배가 가능한 나무 등도 많이 심어 한때 쓰레기 섬으로 불렸던 인공섬은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녹색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끝으로
사실 ‘꿈의 섬’에는 비옥한 대자연이나 가슴 설레는 놀이기구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곳에는 인간의 지혜가 담긴 ‘꿈’이 있다. 쓰레기 문제라는 인간 번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을 일으켰지만, 그것을 해결한 것도 역시 인간이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뒤에는 반드시 이를 바로잡는 명철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당초 계획과는 조금 다른 형태일지 모르지만, 섬이 저런 아비규환을 뚫고 나온 것도 그런 선조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한 후 다시 한 번 섬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꿈의 섬 홈페이지
꿈의 섬 Wikipedia
도쿄 쓰레기 전쟁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