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교회 우치무라 간조 기념당 – 기독교 지도자 우치무라 간조를 기리는 유기적 건축과 무교회주의를 기리는 기념관

Culture

얼마 전 여행으로 가루이자와를 방문했다. 최근에 생긴 세련된 복합시설인 ‘하루니레테라스’를 향해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에 왼편으로 급경사의 언덕이 보였고, 그곳에 있는 표찰에는 [고원교회, 돌의 교회]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왠지 조금 궁금해져 목적지인 하루니레 테라스를 뒤로 하고 급경사면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몇 분 후 길이 열리면서 보이는 것은 아치형 돌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외관만 봐서는 어떤 취지의 건물인지 짐작할 수 없다. 입구 부근의 안내판을 보니 ‘오늘은 결혼식 때문에 견학이 불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야 비로소 이곳이 결혼식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으리으리한 분위기는 무엇일까. 도쿄의 채플과는 전혀 다른 엄숙하고, 전위적이고,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이 교회에 대해 알아보니 이해가 되었다. 이 교회는 메이지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로서 일세를 풍미했던 그 유명한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연한 만남에 대한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돌로 된 교회에 대한 소개와 우치무라 간조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돌의 교회・우치무라 감삼 기념당이란?

돌의 교회 우치무라 감삼 기념당은 나가노현 기타사쿠군 가루이자와초에 있는 교회이자 기념관이다.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로, 지상은 예배당, 지하에는 우치무라 간조 기념당으로 되어 있다. 돌과 유리의 서로 다른 아치가 겹쳐진 독특한 형태는 미국인 건축가 켄드릭 켈로그의 작품이다. 돌은 남성, 유리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켈로그는 이 땅을 직접 발로 뛰며 땅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가루이자와의 사계절과 우치무라 간조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는 독창적인 건축을 완성했다고 한다. 우치무라 감삼의 ‘신이 상상한 자연이야말로 기도의 장소’라는 사상에서 탄생한 이 건물은 유기농 건축이라 불리며, 자연과의 조화, 즉 건물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사진(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느낌)

이러한 사상은 아마도 그가 주창한 ‘무교회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 그 ‘무교회주의’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그 주창자인 우치무라 간조라는 인간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치무라 감삼이란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1861년 3월 23일 ~ 1930년 3월 28일)는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문학가, 전도자, 성서학자이다. 복음주의 신앙과 시사 사회 비판을 바탕으로 일본 고유의 무교회주의를 주창했다. ‘대표적인 일본인’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 정신의 역사적 변천

우치무라 간조는 18세 때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지만, 다감각적인 청년 시절에는 아직 일본이라는 국가의 형태가 정립되지 않았고, 이 시대의 다른 유능한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모습을 고민하는 것과 자신의 모습을 고민하는 것은 같은 의미였다. ⧏33⧐ age ⧏35⧐ 나이 ⧏34⧐ 우치무라의 그러한 태도는 그의 묘비명이 된 다음 격언으로 표현된다.

I for Japan; Japan for the World

Japan for the World; The World for Christ

The World for Christ; The World for Christ;

And All for God

그러나 우치무라가 직면한 역사적 현실은 많은 경우 우치무라의 이러한 이념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적으로는 부국강병, 식산흥업의 슬로건 아래 청일전쟁, 청일전쟁, 민중의 피해를 경시한 아쓰오 광독 사건에 직면했고, 국외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된다. 우치무라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비전론’을 주장하며 ‘광독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일본이 자신의 ‘천직’을 자각하고 제대로 수행하도록 촉구하는 ‘예언자’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을 반복했다. ‘무사의 자식’이자 애국심이 강했던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가 외래종교인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갈등의 경위는 『나는 어찌하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는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앙을 얻기까지의 갈등 속에서 우치무라의 사상의 기본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치무라가 평생 사랑하게 되는 ‘두 개의 예수(Jesus, Japan)’ 사이의 긴장된 관계는 미국 유학 중 경험한 ‘회심’으로 인해 내적으로는 견고하게 결합하게 되었지만, 외적으로는 계속 이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긴장관계가 우치무라의 사상과 신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애제자 사이토 소지로와 미야자와 겐지

아카마루는 사이토 소지로, 아오마루는 우치무라 간조

(사이토 소지로(西藤宗次郎, 1877년 2월 20일 ~ 1968년 1월 2일)는 이와테현 토와가군 사사마무라(東和賀郡笹間村, 현 하나마키시(花巻市)) 출신의 기독교인이다.

무교회주의 기독교인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의 가장 충실한 제자 중 한 명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주변을 돌보았다. 이와테현 하나마키시(花巻市)의 선종 도코지(東光寺)의 주지 스님의 아들로 태어난 소지로(宗次郎)는 이와테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사범 재학 중 배야서(排耶書, 반기독교적 서적)에 심취했다. 그러나 교직에 들어가자마자 성경을 접하고 우치무라 감삼의 『기독교 신자의 위로』와 『구안록』을 애독하게 된다. 말년에 많은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제자를 가진 불행’이라는 글까지 쓴 우치무라에게 평생을 바쳤으며, 1930년(쇼와 5년) 우치무라가 사망했을 때는 옆방에 머물며 밤낮으로 간병했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니치렌종(日蓮宗) 신자였던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와는 종파를 초월한 교류가 있었으며, 1924년(다이쇼 13년)의 일기에는 겐지가 근무하던 하나마키 농학교에 사이토가 신문 수금을 하러 갔을 때 겐지가 초대해 축음기로 음악을 들려주거나 겐지의 시 ‘永訣の朝(영결의 아침)’으로 보이는 게라프린트를 보여 주었다고 하는 라는 묘사를 볼 수 있다. 또한, 겐지의 산문시 ‘겨울의 스케치’에는 사이토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가토 소지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니모마케즈’의 모델이라고도 한다.

미야자와 겐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

어쩌면 소지로가 존경하는 스승에 대해서도 축음기로 드보르자크를 틀어놓고 겐지와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자비로운 제자를 길러내고, 나아가 미야자와 겐지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에게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는 인물,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가 주창한 무교회주의에 대해 그 개요부터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무교회주의란?

무교회주의(無教会主義)는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가 주창한 일본 특유의 기독교 신앙으로, 개신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로는 Non-church Movement라고 표기한다. 무교회 운동, 무교회 기독교, 무교회주의 기독교라고도 한다(신도들 사이에서는 ‘무교회’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성례전인 개신교의 세례, 성찬 등 성례전과 교회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도 아닌 기독교로 간주된다.

무교회주의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무교회였다’, ‘바울은 무교회였다’는 이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무교회주의는 ‘교회’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실제로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는 십자가교라고 했다. 무교회주의는 교회주의, 교회 정신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주의이지, 기독교의 복음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행위인 동시에 교회의 행위”이며, “세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성원으로 서는 자”가 기독교 신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가톨릭도 개신교도 아닌 기독교로 간주되고 있다.

도대체 이 무교회주의와 앞서 언급한 돌의 교회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공식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그 일부를 발췌해 보자.

새가 날아오르고 빛이 가득하다

이곳은 순결한 맹세의 장소

나무숲을 지나 만나게 된다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가루이자와의 대지와 부드럽게 녹아든다.

돌과 유리로 이루어진 고요한 교회

<중략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야말로

교회가 된다고 설파하는 무교회라는 사상

정신이 살아 쉬는 당내에는

빛과 초록이 축복처럼 가득 있다.

하나도 같은 형태가 없는

돌이나 나뭇잎이나 구름처럼

하나로서 같은 존재가 아닌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걷기 시작한다.

유구한 세월 속에 있는 교회 안에서

번뿐인 대체할 없는 시간이 새겨진다.

‘신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팔만대장경을 신봉하는 일본인에게는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신도적, 다신교적, 혹은 애니미즘적 의미는 아니다. 우치무라는 자연을 미적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연을 통해 신을 찬양하고 자연과 교감함으로써 신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자연과학자라는 일면도 있었다. 삿포로 농학교에서 수산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농상부 공무원으로 수산과에 근무하며 ‘일본산 어류 목록’ 작성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는 삿포로 농학교를 졸업한 직후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실용과학을 배웠고, 우리나라의 물질적 자원을 개발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는 결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에게서 우리는 목수의 아들로 인류의 구세주이신 분을 것이다. … 어부 베드로와 천막 장사꾼 바울이 우리의 본보기였다. … 우리의 목적은 영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훈련과 도달점은 물질적이었지만…”

즉, 그는 일방적으로 자연을 숭배하는 신자가 아니라, 현재 자연의 위협과 자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투쟁과 멸망의 국면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공존의 사상을 기초로 한 것은 물론 자연과 인간의 불가시적 관계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우주론으로서의 그리스도 구원사의 신봉일 것이다.

요컨대 무교회주의란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인간의 제도인 교회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대자연의 ‘무한’과 ‘교통’을 함으로써, 또한 ‘잃어버린 성자’와 ‘영교’를 ‘맺음’으로써, 말하자면 자연 그 자체를 교회로 삼는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저절로 결속되어 모인 교회야말로 진정한 교회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결정체가 바로 돌로 된 교회인 것이다.

맺음말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가 처음으로 가루이자와의 땅을 밟은 것은 1921년(다이쇼 10년)이다. 사실 돌 교회 바로 앞에는 고원교회라는 개신교 교회도 있다.

우치무라는 그곳에서 시마자키 후지와무라, 키타하라 시라쿠치 등 문인들과 함께 ‘예술 자유 교육 강습회’ 등의 행사를 열었다.

그 후 말년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아마 그래서 후계자들이 이 땅에 돌로 된 교회를 세웠을 것이다.) 느낀 것을 느낀 대로 표현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하는 예술자유교육 강습회의 기풍. 나도 이 교회 안에 있는 목사관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우치무라 감삼의 글귀가 여러 개 걸려 있고, 과거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커플들의 사진이 무수히 걸려 있었다. 사진 속 커플들은 모두 한결같이 행복해 보였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미소에는 모두 가루이자와의 웅장한 나무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볕이 비치고 있었다. 우치무라 감삼의 철학, 가르침은 이런 형태로도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정신은 제자인 사이토 소지로, 나아가 미야자와 겐지가 주창한 ‘진복(眞福)’이라는 사상까지 감화시켰을 가능성도 크다. 그것은 강요하지 않는, 소박하고 소박한 것이다. 돌교회의 존재가 증명하듯, 자연과 어우러지고 자연을 존중하며 오로지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는 사상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블로그의 필자:R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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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치무라 감삼의 과학

https://www.jstage.jst.go.jp/article/jhsj/19/134/19_106/_pdf

로마서」8장의 자연관 수용과 전개

http://www.ajih.jp/backnumber/pdf/43_02_06.pdf

근대 신도의 일신교

https://www.cismor.jp/uploads-images/sites/2/2008/02/1e5f4dc1936300e7d0a32f4baed904b9.pdf

돌의 교회 공식 홈페이지

軽井沢 石の教会 内村鑑三記念堂
石とガラスが織り成す神秘の教会。自然の中に息づく空間で厳かな誓いを

우치무라 감삼 Wikipedia

内村鑑三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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