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5일,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20년 가까이 수상 소문이 돌았던 무라카미는 이번에도 수상하지 못했고, 이를 속보로 접한 하르키스트(무라카미 문학 팬들의 속칭)들은 세계 동시 다발적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서 고조되는 들뜬 분위기에서 ‘무라카미씨 낙선’ 소식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이제 문학 팬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풍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낙선’이라는 현상 하나를 가지고 그의 문학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어떤 잣대로 결정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에 문학의 가치를 부여해도 되는 것일까.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20년 가까이 한 아시아계 소설가가 전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왜 이토록 그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그런 그의 작품성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작가의 경력과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베라는 도시를 통해 풀어나가고, 그리고 가끔씩 일개 얼키스트인 필자의 독단과 편견을 섞어가며 알아보고자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고베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고, 다소 진지한 가정환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스포츠를 즐기기보다는 교실 한구석에서 혼자 독서를 하는 소년이었다. 고베항에 기항한 외국 선원이 두고 간 문고판 양서를 산노미야에서 대량으로 사서 읽기도 했다.
대학에 올라갈 무렵에는 반베트남 전쟁으로 촉발된 학생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조용하고 고독을 좋아하는 그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관에 가거나 재즈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 흐름대로 재학 중 작은 재즈 카페를 열었다. 그때는 이미 지금의 아내와 학생 결혼을 한 상태였다.1971년. 그가 아직 21살 때였다.
그로부터 7년간 오로지 재즈카페 경영에 몰두하던 그는 문득 떠오른 듯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소설잡지 ‘군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다. 독특한 문체로 단숨에 주목받은 그는 곧 카페를 접고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별히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다. 지조는 있지만 사회의 흐름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조용히 자아를 마주한 결과, 우연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작품성・고베라는 도시
・고유명사제거
그의 작품에는 ‘고유명사’가 극히 적다. 편의점, 음료수 제조회사, 기차역, TV 프로그램…. 소설을 장식하는 여러 요소에서 고유명사는 훌륭하게 제거되고, 편의점이라면 ‘편의점’으로, 그 설명은 어디까지나 ‘총칭’에 그친다. 그의 글에는 일본 고유의, 즉 토착적인 것이 거의 배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독자는 마치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가 도대체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또한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일본인’이라는 의식조차 희박해진다.
이것은 물론 의도된 것일 것이다. 이런 문체가 된 이유 중 하나로 우선 그가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미국 작가(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카포티 등)를 좋아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 작가들보다 오히려 이러한 문호들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그가 국경 없는 문체를 갖게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마치 번역된 글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 것 같다.
・고베와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토착성의 희박함, 국경 없는 문체는 그의 취향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베’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고베는 일본 효고현 남동부에 위치한 대도시다. 바다와 산이 맞닿은 동서로 길쭉한 시가지와 충분한 수심이 있는 부채꼴 모양의 만으로 발달한 이상적인 항구인 고베항을 가진 일본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다.
당시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외국인도,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도 고베에서는 당연했다.
특히 그가 고등학교 시절 자주 방문했던 산노미야라는 도시는 ‘기타노이진칸가이’라는 거리가 있을 정도로 해외 문화의 색채가 짙은 곳으로, 1868년 개항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그들의 거류지로 이 땅이 지정되었다.
기타노이진칸가의 역사
그렇게 화려하게 탄생한 그 땅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쇼와 14년)의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같은 해 16년 태평양전쟁에 돌입하면서 오랫동안 고베에 거주하던 재류 외국인이 국외로 추방되거나 모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 또한 종전 후 고도성장기에 의한 재건 과정에서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사라졌다.
그러나 75년경부터 여성잡지들이 잇따라 고베 이인관을 특집으로 다루고, 77년 방영된 TV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인기가 급상승하여 이인관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한적한 유택지였던 기타노마치 일대는 단숨에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이후 주민과 상인들이 협력하여 경관 보전 활동으로 나아갔고, 시에서 풍향계관과 모에기관을 빌려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80년(1980년)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보존과 수리에 힘쓰게 되었다. 또한 산책로 정비, 시티루프 운행 등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관광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세련된 부티크,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또한 이인관이나 레스토랑에서의 결혼식, 피로연이 관광과 함께 인기를 끌면서 멀리서 찾아오는 커플도 많다. 휴일이면 주변은 결혼식으로 화려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산노미야・기타노이닌칸가이
무라카미 소년이 다니던 당시의 거리는 부흥을 이루기 전, 전후의 상처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무라카미 소년도 당시 이 이국적이면서도 상처투성이의 거리를 배회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본이라는 나라를,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맸을까?
그런데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무대는 산노미야라고 한다.
이 작품에는 제이라는 재일 중국인 바텐더가 등장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그의 대사를 아래에 발췌해 본다.
「중국에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 항구에 가서 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중국에 가본 적 없는 중국인. 아무렇지도 않은 대사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것은 당시 무라카미 소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집주인이 없는, 낡은 외국풍의 건물들. 그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배가 드나드는 항구. 그리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인 바다….
그런 풍경을 10대였던 무라카미 소년은 도대체 어떻게 보았을까?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끝맺음
지금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간의 경력과 그의 작품성, 그리고 그 뿌리가 될 수 있는 고베 산노미야라는 도시에 대해 알아보았다. 수십 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문학이 과연 이 산노미야라는 땅이 가져다 준 것인지, 그 진위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면 그의 작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바닷바람의 향기, 기포 소리, 늘어선 식민지풍의 건물들….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한 손에 들고 무작정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표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
“1973년의 핀볼』(1980)
“양들의 모험』(1982년)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
“노르웨이의 숲』(1987)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1992)
“나사벌새 연대기』(1994년, 1995년)
“해변의 카프카』(2002년)
“1Q84』(2009・2010년)
“기사단장 죽이기』(2017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2023년)
출처
쿠리어 재팬
고베시 Wikipedia
고베신문 NEXT
고베 키타노이진칸가이
・신초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