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게 요시하루 –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테즈카 오사무도 질투한, 수라의 길을 걷는 초현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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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그 업적과 권위에 상관없이 다른 만화가들을 가차없이 깎아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질투도 섞여 있겠지만, 가면라이더의 작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을 ‘이런 건 만화가 아니다’라고 일축하거나 우메즈 카즈오가 가져온 원고를 ‘전혀 재미없다’며 문전박대하는 등, 그런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데즈카가 유일하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작가가 있었다.

“츠게 군은 본심으로만 글을 쓰니 부럽기 짝이 없다. 정말이지 이빨에 물건을 끼워 넣지 않잖아요.”

츠게 요시하루. 1940년 도치기현 출생. 만화가. 은둔자, 은둔자. 이렇다 할 히트작도 없이 만화계의 그림자처럼 숨죽여 만화를 그려온 인물. 어린 시절부터 소년원 봉직, 노숙자 경험, 그리고 현재 만화가에서 은퇴하고 도쿄 교외의 도영아파트에서 시민의 일원으로 살고 있는 츠게 요시하루.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대생의 길을 걷다가 부업으로 시작한 만화로 억만장자가 된 데즈카 오사무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존재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츠게는 데즈카가 그릴 수 없었던 인간의 슬픔, 분노, 부조리를 아주 일상적인 삶의 수준에서 그려낼 수 있었다. 데즈카처럼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가슴 뛰는 모험 활극과 같은 무대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은유가 풍부하게 섞인 부조리한 작품들은 초현실주의 만화라고도 불리며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에는 그런 츠게 요시하루의 작품을 작가의 근간을 되짚어보며 풀어보고자 한다.

츠게 요시하루란?

1937년 〈쇼와 12년〉10월 30일 ~.

일본의 만화가이자 수필가. 환상성, 서정성이 강한 작품 외에도 일상과 꿈에 주제를 두고 리얼리즘을 고집하는 작풍이 특징이며, 여행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다. ‘갈로’를 통해 전두환 세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독자를 확보했으며, 1970년대 초반에는 ‘나사식’, ‘겐센칸 주인’ 등 초현실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열성적인 팬을 확보했다. 만화계 외에도 미술, 문학계로부터도 평가를 받아 작품을 해석하려는 시도를 불러일으켰고, 만화 평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장과정

아버지 이치로와 어머니 마스노의 차남으로 도쿄시 가쓰시카구 다테이시의 나카가와베리의 선상(어머니의 친정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츠게가 5살 때 병으로 사망했다.)

1944년 카츠시카구립 혼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 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며 놀게 된다. 당시에는 공습이 심해 통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교를 싫어했던 츠게는 공습으로 휴교하는 것을 기뻐하며 매일 공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 이후 공습을 피해 형 정치를 따라 니가타현 아카쿠라온천으로 학동 피난을 가게 되지만, 낯선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이 무렵부터 안면공포증을 앓게 된다. 이듬해인 1946년, 이 무렵부터 만화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 열광하기 시작해 신간이 나오면 서점으로 달려가는 나날을 보냈다.1950년, 가장 친한 친구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츠게는 진학하지 않고 형이 근무하는 도금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게 되지만, 야근과 철야, 월급이 늦게 지급되는 등 계속되는

편부모, 가난, 전쟁, 홍역,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직…. 어린 시절의 불행이 가득한 생활은 성격 형성에 깊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만화를 그릴 때만이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밀항과 송환

1951년, 14살 때 바다에 대한 동경은 답답함을 넘어 열광적일 정도였다. 바다에서 살기 위해서는 선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해기사 양성 강좌를 통신교육으로 받기도 하고, 요코하마에 나가 정박 중인 배를 견학하기도 했다. 옮긴 도금공장도 노동조건이 열악해 어머니가 봉제업을 시작했고, 장모도 도와주었지만 시아버지와의 생활이 고통스러웠고, 또 안면 공포증 등으로 우울한 심정이 되어 밀항 계획을 세운다. 아버지가 건강하고 가족이 행복했던 이즈오시마(오시마초)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날로 강해지는 시기였다.

어느 날, 선원이 될 생각으로 요코하마로 향하여 밀항을 시도하지만 선원에게 발각되어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듬해인 1952년에도 요코하마항에서 뉴욕행 기선(닛산 기선 닛케이마루 10,000톤)에 하루 분량의 코페판과 라무네만 가지고 잠입. 그러나 노지마사키 앞바다에서 발각되어 요코스카의 다우라 해상보안부에 연행되지만, 선내에서는 케이크와 냉두부(선내에는 두부 제조기도 있었다)를 제공받거나 목욕을 시켜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닛산기선 임원이 탄 해상보안청 순시선으로 옮겨져 뒤를 돌아보니 닛케이마루의 갑판에는 승무원들이 줄지어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 기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만화 데뷔

1953년, 다시 도금공으로 돌아가 형과 함께 도금공장을 경영하는 꿈을 꾸었으나, 홍역 공포증이 심해져 혼자 방에서 공상하거나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직업으로 만화가의 꿈을 키운다. 당시 도시마구 도키와장에 살고 있던 데즈카 오사무를 찾아가 원고료 액수 등을 듣고 프로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이후 도금공장에서 일하면서 만화를 그리다가 1954년 10월 잡지 ‘통쾌북(痛快ブック)'(호분샤(芳文社))의 ‘범인은 누구인가! ‘기소텐가이’로 만화가로 데뷔한다.

18세에 와카키 서방에서 『백면 야샤』로 데뷔. 貸本雑誌『迷路』『忍風』등에 작품을 발표, 1967년부터는 『ガロ』로 발표 무대를 옮겨 『沼』『チーコ』『山椒魚』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ねじ式』으로 많은 독자와 문화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들 작품을 발표한 1967~1968년 한동안은 왕성하게 집필했지만, 1970년대부터는 건강상의 이유로 1년에 몇 편씩만 발표하는 과작이 된다. 신경증을 앓으면서도 1984년 창간된 『COMICばく』지에 『무능한 사람』 등을 매달 연재하다가 1987년을 마지막으로 만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1992년 한 인터뷰에서 한 달 생활비를 17만 엔으로 정하고 있으며, 쓸데없는 지출은 하지 말자고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으며, 아파트 대출금은 월 2만 엔 정도여서 부모와 자녀 3명이 어떻게든 인세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작품의 영화화는 계속됐지만, 츠게는 나이와 신체적 요인 때문인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정 기간을 두고 책의 재출간, 문고판화, 전집 발간 등이 이어져 인세 수입으로 그의 생활이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자전거로 마트를 돌며 반찬을 사는 ‘주부’ 생활은 여전하다. “한 달 전화비가 100~200엔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2018년 2월, 잡지가 ‘츠게 요시하루 특집’을 기획하고, 당시 인터뷰에서 “근황은 빨리 이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 이제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표작 ‘나사식’

그런 인물, 츠게 요시하루의 대표작이 바로 『나사식』이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바닷가에서 해파리에 왼쪽 팔을 물려 정맥이 절단된 주인공 소년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의사는 어디 있느냐”며 의사를 찾아 어촌 같은 기괴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부조리한 일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필요한 여의사(산부인과 의사)를 만나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무사히 라는 내용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현실주의자라 불리는 만화가의 작품답게 한 줄로 요약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이다. 이것은 츠게가 실제로 꾼 꿈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라고 하는데, 확실히 그 그림체는 마치 한여름에 꾸는 악몽처럼 기괴하고 음울하다.

이런 작품인 만큼 당시에는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에 의한 비평까지 시도되었다. 그러나 츠게 자신은 그러한 해석에 반감을 느끼며 전혀 맞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작풍이 초현실적이기 때문에 깊이 읽혀서 작가의 심층이 다 드러난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고 지적했다.

츠게 자신은 “창작의 의미를 모르는 초기 작품에서는 늘어지게 그리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기 쉽지만, 몇 년을 그리다 보면 작품으로서의 구성을 생각하고 대사 하나에도 자각하고 그리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는 경우가 적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이 작품들은 모두 츠게의 망상 세계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언가를 인용한 경우가 많다(눈 그림이 그려진 눈 밑의 간판, 나팔 부는 소년, 기관차 마을 등, 모두 실제 그림이나 사진의 출처가 되기도 한다).

만화 팬 입장에서는 ‘사실 모든 것이 그의 백일몽에 의한 것이었다…’라는 해석으로 낭만적인 느낌을 받고 싶지만, 진실은 다른 것 같다. 사실은 마감일, 생활고,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에 의한 매우 의식적인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이렇게 말했다.

“‘나사식’은 원래 ‘인용문’을 모아놓은 것이다. 대표작이라는 것은 반드시 질적인 최고 걸작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인용되고 이야기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나사식’해석 욕구를 자극하는 ‘해석하고 싶은 작품’이다. 하지만 깊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작이다. 작가가 ‘복선을 깔고 뒷이야기를 심어놓은 것’아니라, 이것은 이른바 ‘무의식의 힘’이다. 작품은 그림과 말이 무의식적으로 훌륭하게 합체된 보기 드문 예”

그렇다, 아마도 이 작품은 스스로 ‘직업 작가’라는 생활인으로서의 강렬한 자의식과 죽음과 질병과 가난에 대한 두려움, 저항, 그러한 무의식이 뒤섞인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츠게 자신도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 공간과 전혀 관계없는 세계-그것은 죽음의 세계가 아닌데-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사식』에는 그런 황홀과 공포의 세계, 이공간의 세계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맺음말

항상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것 같은 인생이다. 데즈카가 시대의 태양이라면 츠게는 달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발광할 수 없고, 단지 데즈카라는 만화의 태양에 비춰지는 존재. 게다가 그것은 어두운 밤에만 나타날 수 있다. 공포, 증오, 슬픔, 분노,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히 밤이다. 밤에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은 총동원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츠게의 작품은 사랑받는다. 용기와 박애, 정의와 사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면이 이 세상에는 많다. 그의 작품은 마치 달빛이 길을 비추는 것처럼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출처

츠게 요시하루 Wikipedia

つげ義春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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