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예술에 필요한 것은 부채와 손수건 두 개뿐이다.
특별한 음향도, 조명도, 미술도 없다. 공연자는 단 한 명뿐이다. 막이 오르면 기모노를 입고 북과 피리의 잔잔한 음악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다. 쿠션 위에 정좌한 줄 알았는데, 천천히 관객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잡담으로 시작해 점차 이야기로 전환해 나간다.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대화’를 표현한다. 부채를 젓가락으로 비유해 밥을 먹는다. 수건을 책으로 비유하여 독서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붓을 멈춘다.
도대체 이게 어디가 ‘예술’인 걸까.
특별히 어려운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한 명의 이야기꾼이라는 연기자가 대화극을 펼치는 것뿐이다. 중요한 장면에서 극적인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소품도 부채와 손수건뿐이라니 너무 싸구려다.
이렇게 겉만 훑어보면 왜 이 예술이 100년이 넘도록 인기를 끌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라쿠고를 조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예술의 깊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꾼의 그 연기력, 빙의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목격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모노를 입은 평범한 남자였던 그가 점점 요염한 유녀로 보인다. 견습생 꼬마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자 그의 뒤에는 보이지 않아야 할 세계가 펼쳐진다. 에도 시대의 풍경이, 냄새가, 때로는 그 온기까지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감싸는 것이다.
그래서 이 ‘라쿠고’라는 문화는 수백 년 동안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그리고 항상 약자의 편이 되어왔다. 가부키나 노에 비해 훨씬 저렴한 관람료로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해 왔다. 서민들의 마음의 버팀목으로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서민의 벗 ‘라쿠고’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라쿠고의 역사
라쿠고는 원래 ‘落語’라고 불리며, 럽고 우스꽝스러운 1인극을 가리킨다.
겐로쿠 시대(1688년-1704년) 교토에서 시작된 이 공연은 처음에는 책상처럼 생긴 단상에 앉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청중에게 돈을 받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가미가타(교토 부근, 간사이 지방)의 라쿠고에는 ‘켄다이(見台)’라는 작은 책상을 이용해 작은 박자를 치며 소리를 내는 연출이 있다. 이것은 교토와 오사카에서 길거리 공연으로 발전한 ‘쓰지바나(辻噺)’의 잔재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목적이 아닌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소란스러움 속에서 눈에 띄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가미가타 말로 청중에게 말을 걸고, 왕성한 서비스 정신으로 애교를 부리는 등 친근감을 주기 위한 다양한工夫(공부)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같은 시기 에도시대에는 연극이나 목욕탕, 혹은 술자리 등 다양한 저택에 초대받아 공연하는 ‘자시키바니시(座敷噺)’가 유행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에도 라쿠고(이후 도쿄 라쿠고)라고 불리게 된 그것은 실내에서 원래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이며, 이야기꾼도 청중에게 거리낌 없이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멋이라고 여겨진 배경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주로 이 에도 라쿠고이다.
풍자로서의 라쿠고 / 『메구로의 꽁치』라는 작품
라쿠고는 원래 서민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요소가 컸다. 마을의 은둔자부터 무가(武家), 나아가 막부 비판에 이르기까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희화화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안태의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에도 시대이지만, 물론 치안도 인프라도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을 것이다. 의료도 발달하지 않아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었고, 교통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곳을 벗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대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포위된 삶이었을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은 바로 이런 풍자문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라쿠고에는 ‘메구로의 꽁치’라는 유명한 연기가 있다.
세상물정 모르는 귀족이 우연히 메구로(도쿄 시내)에서 하찮은 음식으로 여겨져 온 구운 꽁치(생선 종류)를 먹게 된다. 그러자 평소 고급 요리만 먹던 전하가 보기 드문 음식이라며 매우 좋아하게 된다.
나중에 전하께서는 “그 꽁치가 먹고 싶다”며 하인에게 명령해 꽁치를 사 오게 한다. 하지만 삼치는 구우면 기름이 많이 나온다. 그러면 몸에 안 좋다는 이유로 하인들은 기름을 다 빼고, 뼈가 목에 걸리면 안 된다며 뼈를 하나하나 빼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삼치는 부서지기 마련이다. 그런 형태로는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릇에 담아서 내놓는다. 니혼바시 어가에서 들여온 싱싱한 꽁치가 가신들의 불필요한 손질로 인해 본연의 맛을 망쳐 오히려 맛이 없어졌다. 그래서 영주님은 가신을 붙잡고 “이봐, 이건 어디서 잡은 꽁치야?”라고 물었다.
“네, 니혼바시 어가에서 구해 왔습니다.”
“으음. 그건 안 된다. 삼치는 메구로에서 잡아야 한다.”
바닷물고기인 꽁치가 도심에서 잡힐 리가 없다. 그런 상식조차 모르는 전하를 조롱하는 유명한 공연이다. 이런 풍자극은 당시부터 서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민주주의의 시대는 아직 멀었고, 당시 권력자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던 시대였다. 일상의 억압에 대한 시민들의 울분을 낮추는 의미에서도 풍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싫은 일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웃어넘기자는 그 건강한 마음가짐이 절실하게 만담의 역사를 엮어 온 것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이야기꾼
고이마테이 시조(1938~2001)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명실상부한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담가. 아버지 고이마테이 시세이(古今亭志生)도 전후를 대표하는 만담가 중 한 명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들이 한 수 위다. 코흘리개 꼬마부터 화려한 창녀까지, 그의 연기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하다. 또한 그가 구사하는 기교(싸움이나 다툼이 있을 때, 상대에게 던지는 위풍당당하고 날카로운 말투, 물건을 팔 때 하는 말투 등)는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고, 그 거침없는 말투는 마치 음악과도 같다!
필자가 추천하는 공연은 『야나기타 가츠노진』이다.
다치카와 시노스케(1954~)
현존하는 이야기꾼이라면 나는 이 사람이 절대적으로 최고다! 그의 스승은 근대 희극인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평가와 화제성을 가졌던 다치카와 단시(立川談志)이다. 그런 그의 9번째 제자였던 시노스케의 공연은 티켓이 즉시 매진되었다. 고전의 에도 라쿠고와 현대의 창작 라쿠고, 양쪽을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며, 특히 괴담 계열의 연기는 일품이다. 특유의 주름진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마치 접는 듯이 클라이막스까지 끌고 가는 모습은 압권이다.
추천 공연은 『모란등롱』이다.
현대의 라쿠고
약 17세기에 이 나라에서 탄생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 라쿠고.
현대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최근에는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인기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했다.
전직 깡패 출신 청년이 교도소 위문에서 들은 라쿠고를 잊을 수 없어 출소 후 바로 라쿠고가로 데뷔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시각적인 세련미도 더해져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Yose(라쿠고, 강담 등을 공연하는 공연장)의 문화도 건재하다. 도쿄에는 크게 세 곳의 요세키가 현존하고 있으며, 각각 평일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다.
Yose의 티켓은 가부키나 노 등 다른 고전 예능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낮부터 밤까지 영업하며, 한 번 들어가면 끝까지 앉아서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인기 있는 이야기꾼이 출연하는 공연이 있을 때는 서서 보는 관객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본의 전통 예능, 라쿠고.
우스운 이야기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일상에 색을 입힌다. 한편, 라쿠고를 그 성립의 역사를 돌아보면 풍자라는 기능을 통해 서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랑과 정이 넘치는 라쿠고는 앞으로도 계속 서민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나 또한 한 명의 라쿠고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Yose쿠를 찾아갈 것이다.
출처
落語 Wikipedia
신주쿠 스에히로테이
이케부쿠로 공연장
아사쿠사 공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