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인기 명소 킨카쿠지. ‘2023 트래블러스 초이스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액티비티’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금박으로 뒤덮인 화려한 사리전은 그 아름다움으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일본인으로서도 수학여행 시에는 반드시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성만큼이나 화려한 금각사에는 한 승려의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다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지금의 금각사는 사실 재건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방화범을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이 세계적인 천재 작가 미시마 유키오다.
이번에는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유산 금각사의 또 다른 얼굴과 미시마 유키오라는 인간의 작가로서의 특이성에서 히라오카 코위(미시마 유키오의 본명)라는 한 사람의 실상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본 블로그는 문학적으로 상당히 틈새적인 내용임을 미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분은 상당한 일본 마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각사의 간단한 소개
킨카쿠지의 정식 명칭은 ‘가쿠엔지(鹿苑寺)’이다.
교토시 기타구 킨카쿠지초(金閣寺町)에 있는 임제종 상국사파의 사찰로, 사리전인 건물 안팎에 금박을 입혀서 이런 통칭이 붙었다.
원래는 가마쿠라 시대의 공경인 사이엔지 공경의 별장을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만이 양도받아 산장 북산전을 지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리고 1399년(1399년)에 현재의 금각사 사리전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주로 불교도들의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종교적 의미가 희박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관광 명소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1994년(헤이세이 6) 12월, 이 절이 구성요소 중 하나인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가 등록되어 세계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이처럼 초엘리트적인 경력을 가진 금각사지만, 사실 한 번은 전소된 적이 있다. 그것도 자연재해도, 폐불도, 전쟁도 아닌, 단 한 명의 승려에 의한 방화로 인해 전소되었다.
불탄 금각사
1950년 7월 2일 새벽, 금각사에 봉직하는 승려 임양현(林養賢)이 사리전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국보 사리전(금각) 46평이 전소되고 창건자인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만의 목상(당시 국보), 관음보살상, 아미타여래상, 불교 경전 등 문화재 6점도 소실됐다. 범인 린은 저녁 무렵 사찰 뒤편에 있는 좌대문산(左大文字山)의 산속에서 마약 카르모틴을 마시고 배를 움츠리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어 방화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후 6년간 복역 후 옥중에서 병사했다.)
당시 이 너무도 선정적인 뉴스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린의 행동을 지금으로 치면 ‘사이코패스’라고 비난했고, 그가 정신분열증 환자임이 밝혀지자 또다시 그쪽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역시 정신적으로도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스님에 의한 금각사 전소’의 전모를 그 ‘행동’이 아닌 ‘미’에 대한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려 한 작가가 있었다.
바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이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인간
1925년 도쿄도 나카노구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체질로 어린 시절에는 집 밖으로 거의 내보내지 않았다. 할머니의 광적인 사랑을 받으며(어머니가 있는 2층에서 격리되어 할머니가 있는 1층에서 10년 이상 연금을 당했고, 그로 인해 자가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가부키 등 귀족적인 취미를 포함한 과보호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것들은 훗날 극작가로서 미시마의 피와 살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 허약한 체질은 강렬한 콤플렉스로 심어지게 되고 동시에 건강한 육체를 ‘미’로 숭배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갈등은 문학으로 꽃을 피웠다.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 ‘가면의 고백’은 대표작이 되었다. (당시 24세였다)
그리고 사회파에서 에세이에서 에세이에서 무엇에서든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내놓게 된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은막 데뷔, 보디빌딩, 군대 창설 등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파란만장한 생애는 1970년 11월 25일 자위대 주둔지에서의 테러와 참수라는 가장 극적인 결말로 막을 내린다.
그는 일생 동안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구한 작가이자 인간이었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양식미로서의 ‘미’는 소설, 연극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그 태도는 자신의 육체까지 이어졌다.
그는 허약한 체질에 대한 콤플렉스를 반납하듯 근육을 개조해 자신 자체가 ‘아름다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보기에 ‘아름다움’은 찰나적인 것이었고, 그에 맞서는 것이 ‘늙음’이었다. 세월의 결정체인 늙어가는 몸만큼 추한 것은 없고,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듯 그는 찰나적인 육체를 찾아 보디빌딩을 시작했다. 다윗상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육체를 봉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육체 개조가 한창이던 미시마(당시 30세)가 출간한 것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금각사’이다.
소설 『금각사』
이 소설은 1956년(쇼와 31년) 문예지 ‘신조(新潮)’ 1월호부터 10월호까지 연재되었다. 근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며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미조구치라는 말더듬이 소년이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었던 그는 정신적인 금각사를 만들어낸다.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어린 시절부터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제 금각사를 마주했을 때, 그 추악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편으로 정신적 금각사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여성과 성행위를 할 때에도 뇌 속에 금각사가 나타나서 무력해진다.
이런 식으로는 현실 세계를 살아갈 수 없다. ‘아름다움’의 권위가 되어버린 금각사에 대한 증오를 느끼게 된다. 원흉은 ‘정신적인’ 금각사이지만,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만드는 것은 ‘행위’밖에 없다. 그래서 주인공은 ‘금각사 소실’이라는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같은 해 10월 30일 신초샤에서 출간되어 15만 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요미우리신문 설문조사에서 쇼와 31년도 베스트 원으로 선정되어 제8회(1956년도) 요미우리 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문고판은 신초문고에서 출간되어 2020년 11월 현재 누적 판매량 361만 8천부를 기록한 롱셀러 소설이기도 하다.
“내가 금각을 불태운 것은 내 행실을 보면 보기 싫어서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심에서 불태운 것이지만, 진심은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체포된 후 린이 경찰에 사건 동기를 진술할 때 한 말인데, 아마도 미시마는 이 발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즉, 미시마는 하야시의 ‘행위’가 아닌 ‘미’에 대한 의식에 동정심을 느껴 그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미시마는, 아니, 히라오카 고위(平岡公威)는 어린 시절 ‘청병탄(青炳丹)’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마른 체격에다 동성애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즉 그도 린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름답지 않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질투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닐까?
맺음말
히라오카 공위와 임양현이라는 두 인물. 그리고 그 사이에 세워진,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금각사라는 건물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금각사가 소실되기 전에는 그렇게 금박으로 뒤덮인 건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참 소박한 사찰로 보인다. 이에 대해 린은 질투를 느꼈다…)
오늘도 찰나성과는 거리가 먼, 보수와 점검을 마친 이세 금각사가 관광객들의 셔터 세례를 받고 있다. ‘아름다움’에 살았던 두 사람은 저승에서 이 광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출처】
◆Tripadvisor
◆금각사HP
◆가엔지Wikipedia
◆성곽 모형 제작 공방 블로그
◆영화「Mishima-a-Life-in-Four-Chapters」사진
◆신슈 독서회 미야자와